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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2일 금요일

    하늘공원 이전, 난지도 쓰레기산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늘공원의 높은 언덕은 자연적으로 생긴 산이 아닙니다. 한강의 낮고 평평한 섬이었던 난지도에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약 15년 동안 쓰레기가 쌓이면서 만들어진 지형이에요. 지금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은 그 두 쓰레기산을 안정화해 조성한 곳입니다. 서울시 월드컵공원 안내

    꽃과 농작물이 자라던 섬에는 어쩌다 서울의 쓰레기가 모이게 되었을까요?

    난지도 과거 모습, 쓰레기장이 되기 전에는?


    꽃과 철새가 찾아오고 농사를 짓던 섬

    난지도라는 이름에는 쓰레기 매립장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매립 이전에는 한강의 섬이었어요. 서울시 공원 안내는 난초와 지초가 자라고 여러 꽃과 철새를 볼 수 있던 곳으로 소개합니다. 이름도 난초의 ‘난(蘭)’과 지초의 ‘지(芝)’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월드컵공원 안내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땅이기도 했습니다. 서울기록원의 ‘우리의 공원’ 온라인 전시에 공개된 1970년대 겨울 사진을 보면, 논과 밭이 펼쳐진 낮고 평평한 풍경이 나타납니다. 지금처럼 높은 쓰레기산이 생기기 전의 모습이죠.

    매립 이전 난지도의 낮고 평평한 농경지와 현재 하늘공원 억새밭을 대비한 AI 재현 이미지
    기록 사진을 참고한 재현 이미지. 매립 이전 난지도의 농경지와 현재 하늘공원. 억새밭을 대비한 것으로, 실제 기록 사진이나 동일 지점의 전후 사진은 아닙니다.

    1977년 제방 공사와 매립장 지정

    난지도의 변화는 쓰레기가 들어오기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1977년 난지도에 제방을 쌓는 공사가 진행됐습니다. 서울기록원 전시에 따르면 난지도와 성산동 사이의 샛강을 매립하고, 한강 쪽에 제방을 쌓아 땅을 확보하는 공사였어요. 그해 제방 안쪽이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됐고, 1978년부터 쓰레기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기록원

    따라서 매립장 지정은 1977년, 실제 매립 시작은 1978년으로 구분하면 됩니다.


    서울의 쓰레기는 왜 난지도에 계속 쌓였을까?


    생활쓰레기와 산업·건설폐기물이 한곳으로

    당시 난지도에 들어온 것은 음식물이나 생활쓰레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연탄재와 가전제품을 비롯해 산업폐기물과 건설폐자재까지 여러 종류의 폐기물이 모였습니다. 오늘날처럼 분리배출과 종류별 처리가 정착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쓰레기가 섞여 매립됐어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

    들어오는 쓰레기의 구성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서울기록원 전시는 1970년대에는 연탄재의 비중이 컸고, 1980~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가전제품 등 일반쓰레기의 비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합니다. 집을 데우던 연료와 생활용품의 변화까지 매립장에 남은 셈입니다. 서울기록원

    처음에는 7m까지만 매립할 계획이었다

    처음부터 거대한 쓰레기산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서울기록원이 소개한 초기 계획은 제방 높이인 7m까지만 쓰레기를 매립하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녹지대로 가꾸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난지도를 대신할 매립장을 찾는 일이 늦어지면서 운영 기간이 계속 연장됐습니다. 쓰레기를 받을 장소는 그대로인데 반입은 이어지니, 매립지는 점점 높아졌어요. 서울기록원

    대체 매립지를 확보하지 못한 채 반입이 이어지면서, 7m로 계획했던 매립지는 두 개의 쓰레기산으로 커졌습니다.


    난지도 쓰레기산의 높이와 매립량은?


    약 15년 동안 쌓인 쓰레기, 9,200만 톤 이상

    서울기록원은 난지도에 약 15년 동안 모인 쓰레기를 9,200만 톤 이상으로 설명합니다. 이 쓰레기더미가 오늘날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의 바탕이 된 두 개의 산을 만들었습니다. 서울기록원

    현재의 노을공원은 제1매립지, 하늘공원은 제2매립지가 공원으로 바뀐 곳입니다. 두 공원이 주변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서울기록원

    최고 해발 약 98m, ‘아파트 30층’은 규모를 설명하는 비유

    서울시 월드컵공원 안내는 난지도 쓰레기산의 최고 높이를 해발 98m로 소개합니다.

    해발고도는 바닷물의 평균 높이를 기준으로 잰 값입니다. 원래 땅 위에 쓰레기만 정확히 98m 두께로 쌓였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파트 30층 안팎’이라는 표현은 크기를 짐작하는 비유입니다. 건물마다 층 높이가 다르므로 정확한 환산값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평평한 섬에 그만큼 큰 인공 지형이 생겼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다.

    난지도의 변화는 다음 연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시기주요 변화
    매립 이전한강의 섬으로, 논밭과 자연 경관이 있던 공간
    1977년제방 축조 공사와 쓰레기 매립장 지정
    1978년쓰레기 매립 시작
    1978~1993년약 15년간 매립이 이어지며 두 개의 쓰레기산 형성
    1993년난지도 매립 종료
    1996년부터침출수·매립가스 등을 관리하는 안정화 사업 추진
    2002년 5월월드컵공원 개원

    자료: 서울기록원, 서울시 월드컵공원 안내. 서울기록원


    15년간 쌓인 쓰레기산이 가져온 심각한 환경 문제

    쓰레기산의 문제는 높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폐기물과 접촉해 오염된 물인 침출수가 주변 물길로 흘러들고, 쓰레기가 분해되면서 메탄을 포함한 매립가스가 발생했습니다.

    서울기록원에는 매립이 끝난 뒤인 1994년의 ‘매립장 침출수 샛강유입에 따른 현황보고’가 남아 있습니다. 쓰레기 반입을 멈춰도 오염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는 기록입니다.

    악취와 먼지뿐 아니라 화재도 문제였습니다. 서울기록원 온라인 전시에는 1992년 쓰레기더미 화재 사진이 공개돼 있습니다. 당시 주민과 관리자가 마주한 문제는 쓰레기를 더 받을 공간뿐 아니라, 이미 쌓인 쓰레기에서 나오는 물과 가스를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


    1993년 매립 종료, 그러나 쓰레기산은 남았다

    1992년 김포·인천 지역에 수도권매립지가 조성되고, 난지도는 1993년 완전히 폐쇄됐습니다. 약 15년에 걸친 쓰레기 반입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서울기록원

    하지만 매립장을 닫는다고 쌓인 쓰레기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부에서는 분해가 계속되고, 침출수와 매립가스도 발생합니다. 이제 서울은 쓰레기를 받아들이는 일보다 이미 쌓인 쓰레기를 관리하는 문제와 마주했습니다.

    서울시는 쌓인 쓰레기를 남겨둔 채 환경 영향을 줄이는 안정화 사업을 추진했고, 이후 공원화 과정을 거쳐 2002년 5월 월드컵공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서울기록원

    하늘공원에 오를 때는 억새밭뿐 아니라 언덕의 높이에도 잠시 눈을 돌려보세요. 매립 이전의 논밭 사진과 비교하면, 한 도시가 버린 쓰레기가 땅의 모양까지 바꾸었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쓰레기를 왜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을까요? 난지도 쓰레기산을 치우지 않은 이유에서는 제거 대신 안정화를 선택한 배경을 이어갑니다.


    참고 자료

    자료 확인일: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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